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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7:28
필롤로지로 읽는 서양사와 서양 고전 Ⅰ: 유대교, 기독교, 중세
2026.08.26
27:19
세계 끝의 글쓰기 - 인간 이후, 국가 이후, 문학 이후
2026.08.12
3:48
신의 죽음과 주체의 소멸
2026.08.04
5:14
알렉상드르 코제브, 『헤겔강독입문』 - 역사의 종언을 예고한 20세기 최고의 헤겔 해석
2026.07.24
30:20
행복을 위한 긍정심리학
2026.07.22
4:34
왜 지금 샹탈 무페인가 - 적대에서 경합으로
2026.07.21
5:16
프랑스어 '아르 드 비브르 art de vivre'가 프랑스 문화의 정수인 이유
2026.07.20
5:23
버지니아 울프, 『댈러웨이 부인』 - 찰나의 순간에 깃든 영원한 삶
2026.07.19
5:11
'휘브리스(Hybirs)' - 경계를 넘는 순간, 비극은 시작된다
2026.07.19
5:48
뤼스 이리가레, 라캉의 상징계를 뒤흔든 언어의 전복
2026.07.17
5:11
블라디미르 나보코프, 『롤리타』 - 언어의 미학 뒤에 숨겨진 롤리타의 실재와 폭력
2026.07.17
4:07
순자연(順自然)과 '자연스러움' - 같은 자연, 정반대의 길
2026.07.16
4:14
왜 지금 바타유인가 - 금기와 위반의 인류학
2026.07.15
4:48
에우다이모니아: 행복 너머 삶의 번영과 실천
2026.07.14
4:16
AI 시대의 지적 노동과 인간의 사유
2026.07.13
5:03
아타락시아: 흔들리지 않는 평온과 빼기의 쾌락
2026.07.12
3:44
"카르페 녹템"(Carpe Noctem, 밤을 붙잡아라) - 낮의 이성을 넘어 밤의 철학으로
2026.07.11
5:03
제러미 리프킨, 『노동의 종말』 - 노동의 종말이 묻는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
2026.07.10
4:29
지행합일(知行合一) : 양명학이 선언한 인식과 실천의 통일
2026.07.08
27:48
라캉 입문 4: 라캉과 문학 - 라캉의 이론과 개념으로 작품 분석하기
2026.07.08
5:46
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 전략과 경합적 민주주의
2026.07.07
4:16
조르조 데 키리코, 《거리의 신비와 우울》 - 불안이 건네는 실존의 아름다움
2026.07.06
5:27
가야트리 스피박, 「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」 -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인식론적 폭력
2026.07.05
5:02
모리스 메를로퐁티, 『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』 - "사물이 나를 본다"는 느낌, 착각이 아니었다
2026.07.03
4:54
퀑탱 메이야수, 『유한성 이후』 - 인간 없이도 세계는 있었다
2026.07.02
3:36
바타유의 위반과 탕진: 금지 너머의 황홀경
2026.07.01
3:30
휘폼네마타(hypomnemata) - 적는 행위로 나를 짓는 기술
2026.06.30
3:50
존 스타인벡, 『분노의 포도』 - 땅을 잃은 자들의 철학적 연대기
2026.06.29
3:37
구스타프 클림트, 《죽음과 삶(Tod und Leben)》 - 에로스와 타나토스, 포옹과 해골 사이에서
2026.06.28
3:57
동양미학의 '허실'(虛實) -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탄생하는 우주
2026.06.27
4:26
클로드 모네, 《수련(Nymphéas)》 연작 - 모네의 캔버스에 흐르는 베르그송의 시간
2026.06.26
5:05
독일어 'Lebenswelt'(생활세계)가 후설 현상학의 핵심 개념인 이유
2026.06.25
4:34
소포클레스, 『안티고네』 - 죽은 자를 묻을 권리
2026.06.24
36:22
21세기 사유의 지형 읽기 2 - 사이버네틱스와 오토포이에시스
2026.06.24
5:48
밀란 쿤데라, 『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』 - 가벼움과 무거움의 철학적 변주
2026.06.23
4:23
에두아르 마네, 《올랭피아 Olympia》 - 시선의 권력을 뒤집은 응시의 미학
2026.06.22
5:09
여백과 빈 공간: 비움으로 채우는 동서양의 미학
2026.06.21
3:40
아모르 파티(amor fati), 운명을 사랑하라 - 체념적 수용을 넘어선 운명의 찬가
2026.06.20
5:12
단테 알리기에리, 『신곡』 - 지옥을 건너 신의 사랑에 닿는 여정
2026.06.19
4:24
마음은 교정되는 것이 아니다 — '정심正心'과 번역의 배신
2026.06.18
4:25
키치(Kitsch), 잘 만들어진 가짜가 선사하는 두 번째 눈물
2026.06.17
6:04
움베르토 에코의 『장미의 이름』 으로 읽는 지식과 권력의 투쟁
2026.06.16
4:08
2026년 뇌 회로도가 다시 호명한 스피노자 - 내 우울은 정말 ‘마음’의 문제일까
2026.06.15
4:58
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, 『백년의 고독』 - 반복되는 역사와 실존의 미로
2026.06.14
4:46
마르셀 뒤샹, 《샘》 - '예술은 무엇인가'를 묻다
2026.06.1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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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정판 문화 - 조작된 희소성과 소비의 기호
2026.06.12
5:12
쇠렌 키르케고르, 『죽음에 이르는 병』 - 절망이라는 병과 실존의 회
2026.06.1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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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계(張繼), 《풍교야박》 - 천년을 울리는 나그네의 종소리
2026.06.1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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르네 지라르, 『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』 읽기
2026.06.10
5:33
샤를 보들레르, 『악의 꽃』 - 아름다움은 왜 악에서 피어나는가
2026.06.09